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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골 대기근 - 동인도회사의 경제적 착취경제에 투영된 역사 2023. 4. 15. 02:19
1943 famine du Bengale <Wikimedia Commons> 벵골 대기근의 원인
1770년 벵골 대기근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억압적인 정책과 경제적 착취가 주요 원인으로, 극심한 가뭄의 영향을 악화시켜 광범위한 기아와 사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1765년 박사르 전투 이후 벵골, 비하르, 오리사 주를 장악하여 인도에서 영국의 직접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토지 과세와 무역 독점을 포함한 회사의 정책은 지역 주민을 희생시키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기근 이전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의 파괴적인 영향에 취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기근은 식민지 탐욕과 착취가 가져온 결과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로, 오늘날에도 식민주의와 유산에 대한 논의는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의 독점
영국 동인도회사는 벵골에서 필수품의 무역과 생산을 독점하여 인위적으로 물가를 부풀리고 농업 생산량을 감소시켰으며 지역 주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켰습니다. 쌀, 소금, 직물과 같은 필수 상품의 수출을 엄격하게 제재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가격을 상승시켰습니다. 더불어 식량 작물보다 인디고와 아편과 같은 현금화 작물 생산을 장려하였기 때문에 식량 부족시기에 식량의 가용성을 더욱 줄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경제 불안정과 식량 불안정의 환경을 조성하여 기근의 심각성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존 가스틴 중위와 기근 다리에 대한 일화
영국 동인도회사의 장교였던 존 가스틴 중위는 1770년 벵골 대기근 당시 벵골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기근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처참하게 고통받는 모습을 목격한 가스틴은 큰 충격을 받고 굶주린 사람들을 구호하기 위해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가스틴 중위는 식량과 자원을 원활하게 수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다리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기근 다리' 또는 '가스틴의 다리'로 불리게 된 이 다리는 현재 인도 비하르주의 참파란 지역에 있는 간다고 강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선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다리의 건설은 기근 피해 주민들에게 제한적인 구호만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윤 극대화에만 집중한 동인도회사의 횡포로 적절한 대응을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스틴을 포함한 일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가스틴의 노력은 영국 동인도 회사의 광범위한 계획의 일부가 아니라 자신이 목격한 인간의 고통에 감동한 한 개인의 행동이었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이야기는 대규모 비극 앞에서 개인의 행동이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과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체계적인 변화의 필요성과 국민의 복지를 우선시해야 하는 정부와 조직의 책임의 필요성을 일깨워줍니다.
토지 과세 제도와 그 영향
토지세 제도는 농부와 지주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많은 사람들이 토지를 포기하게 만들었고, 기근 기간 동안 농업 생산량을 크게 감소시켰습니다. 1793년 벵골 영구 정착제를 도입하여 토지 세율을 고정하고 세금 징수 부담을 자민 다르라고 불리는 지역 지주들에 개 이전했습니다. 이 제도는 자민 다르가 소작인으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장려하여 광범위한 토지 소유권 박탈과 무토지화, 농업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무거운 세금 시스템과 그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혼란은 가뭄의 영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재앙적인 기근시기로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기근이 인구에 미친 영향
벵골 대기근은 기아와 질병, 사회 불안으로 인해 벵골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000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습니다. 기근은 이 지역의 사회 구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대부분의 가족구성원은 죽음과 이주로 인해 찢어졌고 마을들은 전멸하다시피 변해버렸습니다. 또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절도, 도둑질, 심지어 식인 풍습에까지 눈을 돌리면서 범죄와 사회 불안을 급증하게 만들었습니다. 기근으로 인한 큰 고통과 죽음은 이 지역의 집단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상처를 남겼으며 식민지 착취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기근에 대한 영국의 대응
기근에 대한 영국 동인도회사의 대응은 부적절했으며, 지역 주민의 고통은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회사의 이익 유지에 집중했습니다. 광범위하게 퍼진 기아와 죽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쌀과 기타 필수품을 제국의 다른 지역으로 계속 수출하여 벵골의 식량 부족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회사의 구호 활동은 제한적이고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으며, 굶주린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구호를 거의 또는 전혀 제공하지 않는 공공사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기근 기간 동안 벵골 사람들의 복지에 대한 회사의 냉담한 무시는 식민 통치의 비인간성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대기근의 유산과 교훈
벵골 대기근은 식민지 착취가 가져온 파괴적인 결과와 위기 상황에서 취약 계층의 복지를 우선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대기근의 비극은 규제되지 않은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영향과 정부와 조직이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책임감 있는 정책을 채택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시기의 교훈은 세계가 세계화, 기후 변화, 경제적 불평등 심화라는 도전과 싸우고 있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대기근은 무분별한 탐욕이 초래할 수 있는 인명 피해와 공평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인도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
벵골 대기근과 그 여파는 인도에서 영국의 통치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결국에는 19세기와 20세기 인도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근으로 인한 영국 식민 통치의 잔인하고 착취적인 성격이 드러나면서 많은 인도인이 영국 권위의 정당성과 식민 통치의 혜택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으며, 마하트마 간디와 자와할랄 네루와 같은 저명한 인도 민족주의자들은 기근을 인도의 자치와 영국의 지배 종식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꼽았습니다. 고통의 기억은 인도 독립운동에 대한 지지를 불러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결국 1947년 영국 통치가 종식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770년 벵골 대기근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정책과 경제적 착취로 인해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대기근으로 말미암아 식민주의의 파괴적인 결과와 책임 있는 거버넌스 및 경제 정책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기근에서 얻은 교훈은 오늘날 기후 변화, 불평등, 지속 가능한 개발의 필요성과 같은 글로벌 도전과제에 직면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느껴집니다. 과거의 다양한 사건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이해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보다 우선시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참고문헌
Jha, P. (2000). 1770년 비하르 대기근(The Great Bihar Famine of 1770)
Mukherjee, S. (2010). 간다게의 기근 다리(The Famine Bridge on the Gandak)
Chakrabarty, D. (2000). 유럽의 지방화: 탈식민지 사상과 역사적 차이(Provincializing Europe: Postcolonial Thought and Historical Dif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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