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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의 기원 - 지식의 저장과 공유의 혁명
    과학과 기술의 역사 2023. 6. 8. 23:07

    사마르칸트 실크 종이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아닌 종이의 발명은 인류가 지식을 저장하고 전파하는 방식을 변화시켰으며, 현대 문명의 흐름에까지 영향 준 매체라 할 수 있습니다.

     

    종이의 생산의 시작

    종이의 역사는 서기 105년경 동한(東漢) 왕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채륜이라는 황실의 환관이 현대적 형태의 종이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채륜이 발명하기 전에는 뼈, 대나무 조각, 비단 등에 비문을 새겼는데, 이러한 매체는 다루기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노동 집약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습니다.

     

    채륜이 만든 종이는 뽕나무 껍질, 대마, 낡은 헝겊, 어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재료들을 물에 담가 펄프를 만든 다음 얇은 펄프 층을 물기를 빼고 자연 건조해 균일한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으로 만들어낸 종이는 이전의 비문 재료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고 편리했습니다. 종이의 등장은 이러한 시간 소모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보다 접근하기 쉬운 지식 보존 매체 전파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중앙아시아로 종이를 전파한 고선지장군

    고구려의 혈통을 이어받은 당나라의 군사 전술가였던 고선지 장군은 기민한 책략으로 석국(현재의 타슈켄트)의 주권을 찬탈하고 왕족과 후손들까지 당의 수도인 장안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고선지 장군의 석국 원정은 중앙아시아와 남부러시아에 이르는 안서도호부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석국의 몰락은 서방의 불만을 일으켰으며 안서도호부를 되찾기 위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에 당 현종은 보복 원정 명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현재에는 '탈라스 전투'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 벌어진 5일간의 전투는 당나라 고선지의 패배로 이어졌고 그는 이 패배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영문도 모른 채 사형당하게 됩니다. 전투의 패배 속에 남겨진 2만여 명의 포로 중에는 동한 왕조 시대에 개발된 비밀공예의 장인들이 섞여있었습니다.

     

    종이는 751년까지 파미르고원(신장 지구)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탈라스 전투로 인해 파피루스에서 종이의 사용으로 흐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로잡힌 장인은 사마르칸트로 이송되었습니다. 이 도시에 정착한 장인들은 최초의 제지 공장을 세웠고 넓은 간격의 선 패턴이 특징인 사마르칸트 제지'를 탄생시켰습니다. 종이의 도입으로 이슬람 세계의 표준을 정립하고 중동과 유럽을 넘어 문명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고선지가 탈라스 전투에서 패하지 않았더라면 종이가 유럽으로 전파되는 데 차질을 빚어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지연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주장도 제시했습니다.

     

    중국에서 제지 기술이 전파된 것은 실크로드의 번화한 무역로 덕분이기도 합니다. 이 역사적 전환의 주역은 불경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 불교 승려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중국에 머물면서 종교 경전을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제지 기술도 습득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승려들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8세기경 제지술이 중앙아시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지적, 문화적 추구를 열정적으로 장려한 압바스 칼리프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종이의 채택을 촉진하여 종이를 학술 활동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유럽에 도착한 종이

    지 기술의 문화적 전승은 11세기에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먼저 종이를 채택하면서 유럽에 전파되었습니다. 스페인에 제지 기술이 도입된 것은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무어인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종이의 도입은 유럽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문학과 학문 발전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13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파브리아노는 제지 생산의 주요 거점으로 부상했습니다. 파브리아노의 제지 공장은 유럽 최초의 제지 공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술 혁신을 예고했습니다. 파브리아노 제지업자들은 제지 공장을 식별하기 위해 생산 과정에서 종이에 워터마크를 삽입하여 초기 형태의 브랜딩인 워터마크를 도입했습니다.

     

    구텐베르크 혁명과 새로운 시대의 여명

    15세기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기 발명은 종이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생산과 손쉬운 접근성을 갖춘 종이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종이와 인쇄기의 결합은 전례 없는 정보 혁명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책의 대량 생산이 현실화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지식의 민주화는 문맹률을 크게 높이고 유럽에서 사회적, 과학적, 정치적 혁명을 촉진하여 흔히 근대라고 불리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정보화 시대에서 종이의 역할

    종이는 현시대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종이는 정보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데 필수적인 매체로 남아 있습니다. 종이는 공식 문서, 교육 등의 주요 형식으로 사용됩니다. 종이 기반의 책, 신문, 잡지는 여전히 중요한 정보 및 콘텐츠의 원천입니다.

     

    종이의 역사적 궤적을 되돌아보면 종이가 지식 저장과 공유에 미친 영향이 지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이는 정보 민주화의 기반이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종이는 개인의 삶과 집단의식을 변화시켜 사회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고, 인류의 혁신과 지식 공유의 힘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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