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
시카리, 로마를 두려움에 떨게 한 암살자들사건과 이슈 2025. 7. 8. 09:42
1세기 팔레스타인의 뙤약볕 아래, 예루살렘의 좁은 골목에서 겁에 질린 눈동자들이 끊임없이 흔들렸다. 군중 속 어디선가 누군가가 쓰러지고, 핏빛이 돌바닥을 적실 때면,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날도 시카리의 칼이 한 사람의 목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시카리(Sicarii)는 최초의 조직적 테러리스트였으며, 그 전술은 현대의 폭력적 극단주의 조직조차도 놀라게 할 만큼 정교했다. 그들의 등장은 단순한 민족 저항이 아니라, 신의 이름을 앞세운 전방위적인 종교적 복수극이었다.로마가 부른 분노: 시카리의 탄생기원후 6년, 유대가 로마의 직할령이 된 뒤 세금과 착취, 문화적 억압이 쌓여갔다. 총독 게시우스 플로루스의 횡포는 극에 달했다. 그는 성전의 보물을 약탈하고, 예루살렘 시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유대인들 ..
-
300년 가뭄이 만든 인류 최초 제국의 몰락, 아카드 제국사건과 이슈 2025. 7. 7. 08:05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기후는 그 모든 것을 지배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인간이 세운 가장 오래된 제국 중 하나였던 아카드 제국은, 제아무리 군사력과 정치력으로 넓은 영토를 장악했더라도 하늘에서 내리지 않는 비 앞에서는 무력했다.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뒤덮은 300년에 걸친 대가뭄은 인간의 문명이 자연의 질서 속에서 얼마나 연약한지를 증명했고, 결국 기후는 왕보다도 강한 존재로 역사에 기록되었다.제국은 강을 먹고 살았다아카드 제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국이었다. 기원전 24세기경, 사르곤 대왕이 세운 이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일하며 번영했다. 하지만 이 번영은 오롯이 농업에 기대고 있었다. 북부는 비에 의존하는 천수농업지대였고, 남부는 강과 운하에 의지하는 관개농업지대였..
-
우연에서 시작된 기적, 페니실린의 진짜 이야기과학과 기술의 역사 2025. 6. 29. 10:08
20세기 최고의 의학 혁신, 페니실린은 정리되지 않은 실험실과 하나의 배양 접시에서 시작되었다. 알렉산더 플레밍의 무심한 관찰력과 호기심이 곰팡이에서 생명을 구하는 물질을 찾아낸 것이다."과학은 때로, 어질러진 실험실과 우연한 콧물에서 시작된다."흙 속에서 태어난 농부의 아들1881년 스코틀랜드의 한 시골 농가, 알렉산더 플레밍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다. 넉넉지 않은 살림 속에서도 그는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고, 런던 세인트 메리 의과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의 첫 번째 꿈은 외과의였지만, 운명은 다른 길을 예고했다. 세균학자 알마로스 라이트 경의 연구실에서 일하게 되며 그는 미생물과 면역의 세계에 빠져들었다.죽음보다 무서웠던 감염병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무렵, 알렉산더 플레밍은 영국..
-
벌레에게 파먹힌 인간, 페르시아 스카피즘의 진실사건과 이슈 2025. 6. 28. 11:06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일은 오래전부터 법과 도덕의 경계를 시험해왔다. 고대 페르시아에서 시행된 '스카피즘(scaphism)', 또는 '사르코스 형벌'로 불리는 이 처형 방식은 통치자의 의도와 그 시대의 권력 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잔혹한 형벌이 어떤 시대적 흐름 속에서 등장했고, 어떤 배경과 목적을 갖고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유를 짚어본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와 한 병사의 비극기원전 401년, 페르시아 제국은 권력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와 그의 동생 키루스가 왕위를 두고 충돌한 쿠낙사 전투는 단순한 내전이 아닌 제국의 정통성과 통치 권위가 흔들린 순간이었다. 전투 결과는 왕의 승리로 끝났지만, 역사는 엉뚱한 방향으..
-
검의 이름, 사이포, 역사에서 지워진 아시리아인사건과 이슈 2025. 6. 24. 18:06
1915년, 세계가 전쟁에 휘말려 있던 그 시기, 오스만 제국의 변방에서는 또 하나의 비극이 서서히 전개되고 있었다. '사이포(Sayfo)' — 검을 뜻하는 시리아어 — 이 단어는 아시리아인들의 대학살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50만에서 75만 명이 희생된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참극 중 하나다. 메소포타미아의 후예, 아시리아인의 정체성아시리아인은 단순히 한 민족이라기보다는 고대 문명의 유산을 오늘날까지 간직한 살아있는 역사였다. 그들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서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메소포타미아의 직계 후손이었으며, 바빌론의 벽돌과 니네베의 기록물, 그리고 바위에 새긴 쐐기문자를 전수해온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은 예수가 사용했다 전해지는 아람어를 여전히 일상어로 쓰며, 아람어 성경을 읽는 마지막..
-
잔혹사 이야기 #4 샤를 8세 사망의 숨겨진 진실사건과 이슈 2025. 6. 23. 14:40
1498년, 프랑스의 왕 샤를 8세는 앙부아즈 성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사고사였다. 그러나 500여 년이 지난 지금, 과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이 죽음 뒤에 감춰진 의학적 무지, 사회적 편견, 그리고 정치적 조작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왕의 최후를 둘러싼 이 복잡한 미스터리는 중세 말기 유럽의 정신과 권력의 실상을 엿보게 한다.1498년 4월 7일, 충돌로 시작된 운명샤를 8세는 죄드폼(jeu de paume) 경기 관람을 위해 앙부아즈 성 내부의 아클벡 갤러리를 지나던 중, 머리를 낮은 문설주에 부딪혔다. 그의 키는 약 152cm로, 1.6m 내외였던 통로에서 일어난 충돌은 치명적이지 않은 듯 보였다. 실제로 그는 이후 아무 이상 없이 경기를 관람하고 대화도 나눴다.하지만 이는..
-
잔혹사 이야기 #3 목을 베고 공주를 얻다사건과 이슈 2025. 6. 20. 12:59
마한(馬韓)은 고대 한반도 남서부에 존재했던 정치 연맹체로, 오늘날 전라·충청 지역을 포함한 50여 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심이었던 목지국에서는, 전쟁이 발발하자 적장의 머리를 가져오는 이에게 공주를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이 전해 내려온다. 혼인과 참수를 정치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당시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전쟁과 혼인의 접점, 그 속에 숨겨진 권위의 논리를 들여다본다. 더불어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비류국 송양왕의 대립 또한, 피를 흘리지 않고 권력을 얻는 다른 방식의 설화를 통해 알아보자.삼한의 중심, 마한이라는 이름한반도에 삼한(三韓)이라는 정치 연맹체가 존재하던 시대에 마한은 가장 넓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연맹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
-
잔혹사 이야기 #2 왕좌의 게임 ‘브랜’의 뿌리, 켈트 신화의 브란사건과 이슈 2025. 5. 5. 17:03
켈트 신화 속 브란(Bran the Blessed)의 전설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말하는 머리, 죽은 후에도 지혜를 나누는 존재, 그리고 국가를 수호하는 수호령의 이미지까지—브란의 신성한 머리는 고대 켈트인의 영혼관과 종교적 상징주의가 응축된 강력한 상징물이다. 브란, 인간인가 신인가: 초월적 존재의 탄생브란은 웨일스 신화인 '마비노기온' 두 번째 이야기(Second Branch of the Mabinogi)의 중심 인물로, 리르(Llŷr)와 페나르둔(Penarddun)의 아들이다. 그의 이름은 웨일스어로 '까마귀'를 뜻하며, 이는 죽음과 예언, 지혜의 상징이다. 까마귀는 북유럽과 켈트 신화 전반에서 초자연적 중재자로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브란은 인간임에도 거대한 거인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