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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레에게 파먹힌 인간, 페르시아 스카피즘의 진실
    사건과 이슈 2025. 6. 28. 11:06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일은 오래전부터 법과 도덕의 경계를 시험해왔다. 고대 페르시아에서 시행된 '스카피즘(scaphism)', 또는 '사르코스 형벌'로 불리는 이 처형 방식은 통치자의 의도와 그 시대의 권력 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잔혹한 형벌이 어떤 시대적 흐름 속에서 등장했고, 어떤 배경과 목적을 갖고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유를 짚어본다.

    벌레에게 파먹힌 인간, 페르시아 스카피즘의 진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와 한 병사의 비극

    기원전 401년, 페르시아 제국은 권력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와 그의 동생 키루스가 왕위를 두고 충돌한 쿠낙사 전투는 단순한 내전이 아닌 제국의 정통성과 통치 권위가 흔들린 순간이었다. 전투 결과는 왕의 승리로 끝났지만, 역사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왕의 동생 키루스를 죽인 인물은 미트리다테스라는 병사였고, 그는 이 업적을 연회석상에서 술김에 자랑하고 만다. 문제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가 자신이 직접 키루스를 제거했다고 주장하고 싶어했다는 점이다. 왕의 자존심을 건드린 그 한 마디는 미트리다테스를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스카피즘, 인간을 벌레로 만든 형벌

    스카피즘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의해 전해진다. 그 방식은 잔혹함 그 자체였다. 죄수는 두 개의 속 빈 나무 상자에 상반신만 밖으로 나오도록 고정된다. 그 위에 우유와 꿀이 가득 발라지고, 곤충들이 모여들게끔 유도된다. 죄수는 강제로 우유와 꿀을 먹으며 설사를 하게 되고, 그 냄새와 분비물은 더 많은 벌레들을 유인한다. 벌레들은 그의 살을 파먹고 몸에 알을 낳으며, 피해자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먹힌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는 이 처형이 17일간 지속되었다고 나온다. 미트리다테스는 하루하루 강제로 꿀과 우유를 먹으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유지해야 했다. 음식은 생명을 이어주었지만, 동시에 몸 바깥에 발라진 꿀은 끊임없이 곤충을 유인했고, 그의 피부와 상처, 입과 코에 이르기까지 벌레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배설물 속에서도 알을 낳고 자라는 곤충 떼는 그의 몸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는 극심한 탈수와 감염, 그리고 벌레의 체내 독소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그는 스스로 끝낼 수 없는 고통 속에 갇혀 있었고, 몸은 서서히 기능을 멈추었다.

    스카피즘 형벌의 세부 구조와 실행 방식

    스카피즘은 단순히 곤충에게 먹히는 것 이상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처형 대상자는 두 개의 나무 상자 사이에 눕혀졌고, 몸의 중심부는 상자 안에 고정되며 팔과 다리, 머리만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 구조는 죄수가 움직일 수 없도록 철저히 통제되었으며, 동시에 외부 노출 부위가 곤충에 노출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형벌의 첫 단계는 꿀과 우유를 대량으로 강제로 먹이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영양 공급이 아닌 설사를 유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다음으로는 피부와 얼굴, 눈 주위, 심지어 생식기 주변까지 꿀을 골고루 발라 곤충들이 달려들 수 있도록 했다. 그다음 죄수는 물이 흐르지 않는 늪지나 고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배에 방치되었다. 주변의 벌레와 곤충들은 단시간 내에 몰려들었고, 꿀과 배설물은 벌레들이 둥지를 틀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벌레들은 단순히 외피를 갉는 데 그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죄수의 구멍 난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내부 장기까지 침투했고, 벌레의 알은 인체 안에서 부화해 새로운 유충으로 자라났다. 이는 육체적 고통을 넘어 정신적인 고문이었다. 죄수는 매일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었으나, 꿀과 우유의 지속적인 공급으로 쉽게 사망하지 못했다. 고통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마침내 심한 감염과 쇼크, 탈수로 목숨을 잃을 때까지 생지옥 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메디아에서 키루스까지 잔혹함이 뿌려지다

    페르시아 제국의 법은 처음부터 잔혹했던 것은 아니다. 초기 메디아 시대의 법률은 부족 사회의 관습법을 기반으로 하며 비교적 온건한 편이었다. 키루스 대제의 시대에는 '관용'이 법률의 핵심이었다. 바빌론 포로의 귀환을 허락하고 각 민족의 종교와 관습을 존중하던 키루스의 정치철학은 오히려 고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인권 중심의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다리우스 1세를 거치며 법률은 체계화되기 시작했고, 캄비세스 2세에 이르러 전환점을 맞는다. 부패한 판사 시삼네스를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재판석을 만들게 한 그의 조치는 공포를 통한 통치를 예고했다. 처형은 단순히 사법적 판단을 넘어서 왕권의 상징이 되었고, 이 상징이 스카피즘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유산, 잔혹함은 수입품이었다

    스카피즘은 페르시아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처형 방식이라기보다는, 고대 근동 여러 문명에서 사용하던 극단적인 형벌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었다. 아시리아 제국은 꿰뚫기형과 같은 공포심을 유발하는 처형을 오래도록 활용했고, 바빌로니아에서는 화형이나 산채로 가죽을 벗기는 행위가 공개적인 사형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지역 내 권력자들에게 효과적인 통제 수단으로 여겨졌고, 자연스레 페르시아에도 흡수되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그 유산을 단순히 계승한 것이 아니라, 통치 이념에 따라 변형하고 체계화했다. 법률과 형벌은 이제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한 규범이라기보다는 왕의 권력을 드러내고 정적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모했다. 당시의 통치 구조 아래에서는 왕의 말과 감정이 곧 법이었고, 처벌은 그 권위의 실현 방식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스카피즘 같은 처형법은 등장했으며, 그것은 제도적 폭력의 구체적 표현이었다.

    신과 법, 그리고 왕권: 종교적 정당화의 그늘

    페르시아에서는 통치자의 권위가 아후라 마즈다, 곧 신으로부터 내려온 것으로 여겨졌다. 이 신성한 권위를 바탕으로 한 법은 더 이상 인간의 도구가 아니었다. 절대권력을 쥔 왕은 자신의 감정과 복수를 법이라는 형태로 정당화했고, 이는 스카피즘이라는 형벌로 구현되었다.

    조로아스터교가 국가 종교로서 통합되면서, 이 교리는 법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었고, 종교적 교리가 법의 잔혹함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처럼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극악한 고문은 페르시아의 정체성을 왜곡시키는 핵심 요인이 된다.

    정의인가, 정치적 암흑인가

    스카피즘은 단순히 죄인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왕은 이 형벌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고, 통치에 대한 도전이나 불복종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분명히 알리고자 했다. 죄수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야 했으며, 이는 보통의 사형방식이 아닌 공개적인 모욕과 육체적 파괴를 동반하는 형벌이었다.

    형벌의 대상은 범죄자이면서 동시에 본보기가 되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왕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 고통의 시간은 죄수에게도,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이렇게 스카피즘은 권력의 잔혹함이 얼마나 정교하게 제도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단이었다.

     

    그 이후로도 페르시아 제국은 점차 극단적인 처벌을 늘려갔으며, 법률은 교화가 아닌 통제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다리우스 1세가 꿈꿨던 보편법은 어느새 복수의 도구가 되어 있었고, 정의는 사라졌다.

    지금 시대에 되살아나는 스카피즘의 그림자

    스카피즘은 고대의 이야기로 남았지만, 그 본질은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권력이 법률 제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거나,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압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법이 공정함을 잃고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도구가 될 때, 과거의 스카피즘과 다르지 않은 억압 구조가 작동한다. 표현의 자유, 시민의 권리, 사법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현실 속에서, 이와 같은 구조적 폭력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감시와 책임이 필요하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이 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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