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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이름, 사이포, 역사에서 지워진 아시리아인사건과 이슈 2025. 6. 24. 18:06
1915년, 세계가 전쟁에 휘말려 있던 그 시기, 오스만 제국의 변방에서는 또 하나의 비극이 서서히 전개되고 있었다. '사이포(Sayfo)' — 검을 뜻하는 시리아어 — 이 단어는 아시리아인들의 대학살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50만에서 75만 명이 희생된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참극 중 하나다. 메소포타미아의 후예, 아시리아인의 정체성아시리아인은 단순히 한 민족이라기보다는 고대 문명의 유산을 오늘날까지 간직한 살아있는 역사였다. 그들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서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메소포타미아의 직계 후손이었으며, 바빌론의 벽돌과 니네베의 기록물, 그리고 바위에 새긴 쐐기문자를 전수해온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은 예수가 사용했다 전해지는 아람어를 여전히 일상어로 쓰며, 아람어 성경을 읽는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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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사 이야기 #4 샤를 8세 사망의 숨겨진 진실사건과 이슈 2025. 6. 23. 14:40
1498년, 프랑스의 왕 샤를 8세는 앙부아즈 성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사고사였다. 그러나 500여 년이 지난 지금, 과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이 죽음 뒤에 감춰진 의학적 무지, 사회적 편견, 그리고 정치적 조작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왕의 최후를 둘러싼 이 복잡한 미스터리는 중세 말기 유럽의 정신과 권력의 실상을 엿보게 한다.1498년 4월 7일, 충돌로 시작된 운명샤를 8세는 죄드폼(jeu de paume) 경기 관람을 위해 앙부아즈 성 내부의 아클벡 갤러리를 지나던 중, 머리를 낮은 문설주에 부딪혔다. 그의 키는 약 152cm로, 1.6m 내외였던 통로에서 일어난 충돌은 치명적이지 않은 듯 보였다. 실제로 그는 이후 아무 이상 없이 경기를 관람하고 대화도 나눴다.하지만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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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사 이야기 #3 목을 베고 공주를 얻다사건과 이슈 2025. 6. 20. 12:59
마한(馬韓)은 고대 한반도 남서부에 존재했던 정치 연맹체로, 오늘날 전라·충청 지역을 포함한 50여 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심이었던 목지국에서는, 전쟁이 발발하자 적장의 머리를 가져오는 이에게 공주를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이 전해 내려온다. 혼인과 참수를 정치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당시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전쟁과 혼인의 접점, 그 속에 숨겨진 권위의 논리를 들여다본다. 더불어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비류국 송양왕의 대립 또한, 피를 흘리지 않고 권력을 얻는 다른 방식의 설화를 통해 알아보자.삼한의 중심, 마한이라는 이름한반도에 삼한(三韓)이라는 정치 연맹체가 존재하던 시대에 마한은 가장 넓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연맹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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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사 이야기 #2 왕좌의 게임 ‘브랜’의 뿌리, 켈트 신화의 브란사건과 이슈 2025. 5. 5. 17:03
켈트 신화 속 브란(Bran the Blessed)의 전설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말하는 머리, 죽은 후에도 지혜를 나누는 존재, 그리고 국가를 수호하는 수호령의 이미지까지—브란의 신성한 머리는 고대 켈트인의 영혼관과 종교적 상징주의가 응축된 강력한 상징물이다. 브란, 인간인가 신인가: 초월적 존재의 탄생브란은 웨일스 신화인 '마비노기온' 두 번째 이야기(Second Branch of the Mabinogi)의 중심 인물로, 리르(Llŷr)와 페나르둔(Penarddun)의 아들이다. 그의 이름은 웨일스어로 '까마귀'를 뜻하며, 이는 죽음과 예언, 지혜의 상징이다. 까마귀는 북유럽과 켈트 신화 전반에서 초자연적 중재자로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브란은 인간임에도 거대한 거인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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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사 이야기 #1 헤롯과 살로메사건과 이슈 2025. 4. 28. 13:50
고대 로마 통치 하의 유대 땅, 헤롯 안티파스는 기존의 통치자와는 달랐다. 그의 권력욕과 처세술은 수많은 정치적 드라마를 낳았고, 그중 가장 잔혹한 일화로 전해지는 것은 바로 적장, 곧 세례자 요한의 목을 손에 들고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이 전설은 권력의 광기와 복수의 비극을 극명히 보여주며 오늘날까지도 잔혹한 역사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예언자를 억누른 권력자의 불안기원후 29년 무렵, 갈릴리의 맑은 바람과 페레아의 산등성이 아래서 헤롯 안티파스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눈치를 보며 통치의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공개적으로 드러난 헤로디아와의 불법적 결혼으로 인해 위태로워졌고, 이를 과감히 비난한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는 궁정에 치명적 균열을 가져왔다.요한의 날선 비판이 권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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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의 총성 없이 땅을 얻은 나라들, 어떻게 가능했나?사건과 이슈 2025. 4. 17. 18:56
역사 속 국경은 종종 전쟁과 피로 그어진 선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는 총성 한 발 없이 우연과 합의로 바뀐 국경선들이 존재한다. 이 사례들은 국제 정치와 외교의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내며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도 담고있다. 역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우연과 평화의 국경선 변경 사례'를 모아보았다.국경석 한 개가 움직인 역사적 순간벨기에와 프랑스의 유머러스한 국경 조정 사건2021년 봄, 벨기에 남서부의 한적한 시골 마을 에르켈린느(Erquelinnes)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한 농부는 트랙터로 밭을 갈던 중 거대한 석재 하나가 작업 경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깊은 생각 없이 그 돌을 옮겨 트랙터가 지나갈 수 있도록 정리했지만, 그 작은 행동이 국제적인 화제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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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빛나는 그곳에서: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과학과 기술의 역사 2025. 4. 14. 15:58
2025년, 오사카 유메시마에서 펼쳐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람회,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단순한 전시의 장을 넘어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통합적 시각으로 풀어내는 새로운 무대다. "생명이 빛나는 미래 사회의 디자인"이라는 주제는 기후 위기, 고령화, 기술 의존 사회 속에서 우리가 진정 지켜야 할 가치를 되새기게 만든다. 엑스포가 돌아온 오사카1970년 오사카에서 열린 첫 엑스포는 일본의 고도 성장기를 상징했다. 당시 '인류의 진보와 조화'를 주제로, 산업 기술의 진보를 자랑하던 일본은 세계를 향해 기술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반면, 2025년의 오사카 엑스포는 같은 도시, 다른 가치로 돌아왔다. 이번 주제는 산업의 과시가 아니라 '생명'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둔다. 이는 전통적인 성장 중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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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벌어진 오인 사격의 비극전쟁과 전투의 역사 2025. 4. 13. 14:42
아군 오인 사격(Friendly Fire)은 단순한 군사적 실수를 넘어 전장의 신뢰를 뒤흔드는 비극적 사건이다. 작전 수행 중 아군을 적으로 잘못 인식하여 공격하는 사건으로, 이는 단지 생명 손실에 그치지 않고, 군대의 사기와 작전 수행 능력을 치명적으로 손상시켰다. 혼돈의 전장, 왜 아군을 적으로 오인하는가?아군 오인 사격은 복잡한 작전 환경에서 발생한다. 긴박한 상황, 제한된 가시성, 스트레스가 높은 전장 환경에서 군인들은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며, 이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기 쉽다. 특히 야간 작전, 악천후, 복잡한 지형에서는 식별이 어렵고, 무기 시스템의 기술적 한계까지 더해져 사고의 위험이 커진다.아군 오인 사격의 치명적 영향단순한 인명 피해로 끝나지 않는다. 부대 내 신뢰가 붕괴되면, 전체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