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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혹사 이야기 #1 헤롯과 살로메
    사건과 이슈 2025. 4. 28. 13:50

    고대 로마 통치 하의 유대 땅, 헤롯 안티파스는 기존의 통치자와는 달랐다. 그의 권력욕과 처세술은 수많은 정치적 드라마를 낳았고, 그중 가장 잔혹한 일화로 전해지는 것은 바로 적장, 곧 세례자 요한의 목을 손에 들고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이 전설은 권력의 광기와 복수의 비극을 극명히 보여주며 오늘날까지도 잔혹한 역사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잔혹사 이야기 #1 헤롯과 살로메


    예언자를 억누른 권력자의 불안

    기원후 29년 무렵, 갈릴리의 맑은 바람과 페레아의 산등성이 아래서 헤롯 안티파스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눈치를 보며 통치의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공개적으로 드러난 헤로디아와의 불법적 결혼으로 인해 위태로워졌고, 이를 과감히 비난한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는 궁정에 치명적 균열을 가져왔다.

    요한의 날선 비판이 권력자들의 귓전을 때릴 때마다 안티파스의 밤은 불안으로 물들었고, 고요했던 디베랴 성의 회의실은 뜨거운 논쟁으로 들끓었다. 결국 그는 요한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음습한 마케루스 요새에 그를 가두고, 잔혹한 최후를 결정짓는 서명을 차가운 촛불 아래에서 망설임 없이 내려야 했다.


    축제의 밤, 춤추는 소녀와 맹세의 구속력

    성대한 촛불이 천장을 수놓은 마케루스 궁전의 연회장은 로마식 잔치의 화려함과 유대 전통이 뒤섞인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기둥 사이에 펼쳐진 보라색 벨벳 커튼 앞,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는 은빛 비단 옷자락을 휘감으며 무대를 장악했다.

    그녀의 손목에서 반짝이는 팔찌가 박자에 맞춰 흔들리고, 절도 있는 포즈로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살로메의 춤이 한 동작 끝날 때마다, 홀에 모인 대신들과 장군들은 탄성을 질렀고, 노예 악사들은 거문고와 나팔소리로 리듬을 더했다.

     

    춤이 끝나자 헤롯 안티파스는 갑작스러운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만면의 미소와 함께 선언했다.

    “살로메야,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겠다—이 왕국의 절반이라도 좋다!”

     

    그 말은 잔잔한 호수 위에 던져진 돌과 같아,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한 구속력이 되었다.

     

    순간, 살로메의 얼굴에는 놀라운 결단이 서렸고, 그녀는 조용히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헤로디아는 손짓 하나로 뜻을 전했고, 살로메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세례자 요한의 목을 이 은쟁반에 담아 주십시오.”

    홀은 찬바람이 스친 듯 한순간 정적에 잠겼다. 그러나 맹세의 무게 앞에서 헤롯은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고, 경비병들에게 짧은 명령을 내렸다. 빛바랜 은쟁반이 공물처럼 살로메에게 건네졌을 때, 그의 발걸음은 소년의 천진함과는 정반대인 냉정함으로 굳어 있었다.


    춤추는 왕, 머리를 든 채 행진한 이유

    연회가 절정에 다다른 순간, 고요했던 대열회장은 숨죽인 정적에 잠겼다. 경비병들이 은쟁반을 높이 들어 왕 앞에 공손히 바치자, 헤롯은 차가운 촛불 빛 아래에서 요한의 목덜미를 응시했다. 피묻은 머리칼 사이로 반짝이는 이슬 같은 수분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그의 표정은 흔들림 없었다.

    헤롯은 무겁게 쟁반을 받쳐 든 채 홀 중앙으로 나아갔다. 그의 발걸음은 장중하면서도 의도된 리듬이 가미된 스텝처럼 정확했다. 축제를 알리던 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뒤엉킨 가운데, 그 머리가 흔들릴 때마다 짙은 고기 냄새가 공기를 메웠고, 벽면의 횃불이 그것을 비추어 섬뜩한 그림자를 흔들었다.

     

    한걸음 한걸음 이어질 때마다 참석자들은 숨을 죽였고, 몇몇 대신들은 눈을 감아 차마 보지 못했다. 그러나 헤롯은 손뼉을 치며 낙천적인 리듬을 이어갔고, 괴기스러운 축제의 분위기는 권력자의 무자비함을 드러내는 극적 무대가 되었다. 이 광기 어린 퍼포먼스는 헤롯이 예언자의 목소리를 단지 죽인 것을 넘어, 그 명예와 영향력까지 영원히 짓밟겠다는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전율로 남은 현장: 마케루스의 돌담과 그림자

    헤롯이 마지막 스텝을 내디딘 순간, 홀 안의 공기는 얼음처럼 얼어붙었다. 화려하게 울리던 북소리와 나팔 소리는 잔향만 남긴 채 사라졌고, 잔치상을 가득 채웠던 과일과 빵 조각, 향긋한 포도주가 담긴 잔은 손길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어둠 속에 빛을 잃었다. 횃불이 춤추듯 흔들리며 뿜어내는 붉은 불빛은 벽에 걸린 그림자들을 왜곡시켜, 쇠사슬에 매인 듯 형태를 잃은 모습으로 흔들렸다.

     

    돌담 사이로 전해진 미세한 진동에 참석자들은 한동안 숨을 멈추었다. 일부 대신은 두 손으로 가슴을 누르듯 팔짱을 끼고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입술을 깨물어 차마 보지 못한 광경을 되새기며 떨리는 시선을 교환했다.

     

    차갑고 무거운 정적을 깨는 것은 벽면 아래로 스며든 낮은 숨결 소리뿐이었다. 그 소리는 곧 로마 본국까지 전해진 비밀 누설처럼, 권력자의 잔혹이 알리지 말아야 할 진실이라는 듯 메아리쳤다.

     

    이후의 파장과 여운

    그날 밤의 광경은 마케루스 요새를 넘어 로마의 수도까지 전해졌다. 헤롯의 잔혹 퍼포먼스는 현장에 참석한 외교 사절단에 의해 상세히 기록되었고,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귀에 까지 전해지자 황제는 큰 충격을 받았다. “너무도 무자비하다”는 말이 전해지며 안티파스에 대한 로마의 신뢰는 크게 흔들렸다. 이후 티베리우스는 팔레스티나 속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현지 치안을 감독할 군단장 교체를 지시했다.

    유대 내부에서는 요한의 순교 사건이 종교적·사회적 분열을 심화시켰다. 유력 제사장과 성전 종교 지도자들은 헤롯의 행동을 율법과 전통에 대한 극단적 도전으로 규정했고, 민심은 크게 동요했다. 일부 귀족 가문은 밀접하게 결집하여 세례 요한을 비밀리에 기리는 의식을 치렀으며, 이 의식은 후일 초기 기독교의 예배 형식으로 발전하는 단초가 되었다.

     

    예술과 문학에서도 이 비극은 오랫동안 되새겨졌다. 4세기경 필사본에 삽입된 낙서와 삽화에는 세례 요한의 머리를 든 헤롯이 경고의 상징으로 재현되었으며, 중세 성화에서는 축제의 잔치와 순교의 대비가 극명하게 묘사되었다. 르네상스 거장들은 마케루스 요새의 험준한 풍광 속에 인간의 오만과 폭력을 은유하였고, 현대 작가들은 이 일화를 통해 권력과 도덕의 경계를 재조명하는 문학적 모티브로 활용했다.

     

    현재의 마케루스 유적을 찾는 관광객들은 돌담의 일부에 남겨진 고대 비문과 전승을 통해 그날의 공포와 비극을 생생히 상상한다. 이 잔혹한 일화는 과거의 사건을 넘어, 권력 남용에 대한 보편적 경고와 진리의 힘을 일깨우는 기억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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