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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분 vs 100년 전쟁: 가장 짧았던, 가장 길었던 전쟁전쟁과 전투의 역사 2025. 4. 3. 13:33
역사에서 전쟁은 언제나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 시작은 대부분 권력, 자원, 종교, 민족 간의 충돌에서 비롯되며, 그 끝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류사의 전환점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중에서도 단 38분 만에 끝난 전쟁과 무려 116년 동안이나 지속된 전쟁은 그 상징성과 의미 면에서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바로 1896년의 앵글로-잔지바르 전쟁과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이어진 백년전쟁이다.
가장 짧았던 전쟁: 앵글로-잔지바르 전쟁
1896년 8월 27일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잔지바르 섬에서 일어난 이 전쟁은 단 38분 만에 끝나며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 속에는 제국주의의 탐욕과 아프리카 식민지배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쟁의 발단
당시 잔지바르는 영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으며, 잔지바르의 술탄은 영국의 승인 없이는 즉위할 수 없었다.
그러나 1896년, 술탄 하마드 빈 투와이니가 급사하자 그의 친척 칼리드 빈 바르가시가 영국의 승인 없이 즉위하며 사태가 촉발되었다. 이는 영국의 권위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자,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간주되었다.
전쟁의 전개
영국은 칼리드에게 왕궁을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전달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병력을 배치해 저항 의사를 밝혔다.
이에 영국 해군은 오전 9시 2분부터 왕궁에 대한 포격을 시작했고, 불과 38분 만에 잔지바르 측의 저항은 무너졌다. 술탄의 궁전은 폐허가 되었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쟁의 결과
칼리드는 독일 영사관으로 피신했으며, 독일은 영국의 송환 요구를 거부했다. 이후 칼리드는 동아프리카로 망명하였고, 잔지바르는 사실상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되었다. 이 사건은 영국 제국주의의 군사적 우위와 정치적 통제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독일 영사관으로의 도피는 국제 외교전의 새로운 긴장을 불러왔다. 당시 독일은 제국주의 경쟁에서 영국과 맞서고 있었으며, 칼리드를 보호한 사건은 두 제국 사이의 대립 구도를 더욱 뚜렷하게 만든 하나의 계기였다. 잔지바르의 왕위 문제는 곧 유럽 열강 간의 식민지 갈등으로 확산되었다.
가장 길었던 전쟁: 백년전쟁
백년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닌 14세기에서 15세기까지 이어진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정치, 외교, 군사적 충돌이 집약된 전쟁의 총체였다. 무려 116년간 이어진 이 갈등은 중세 유럽의 봉건제를 붕괴시키고 근대 국가로의 전환을 이끈 결정적 사건이었다.
전쟁의 발단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는 외조부였던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의 혈통을 근거로 프랑스 왕위를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 귀족들은 여성 혈통을 통한 왕위 계승을 인정하지 않는 살리카 법을 근거로 이를 거부하고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를 왕으로 추대했다.
이 왕위 계승 문제는 양국 간 외교 갈등으로 번졌고,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주요 전투와 인물
초반에는 잉글랜드가 크레시 전투(1346), 푸아티에 전투(1356), 아쟁쿠르 전투(1415) 등에서 장궁(Longbow) 전술을 통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오를레앙 해방전(1429)에서 결정적 반전을 일으킨 잔 다르크의 등장으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잔 다르크는 국민적 저항의 상징이자 프랑스 민족주의의 불꽃을 일으킨 인물로, 전쟁의 흐름을 프랑스 쪽으로 끌어당겼다.
전쟁의 결과
1453년, 보르도 전투를 마지막으로 프랑스는 잉글랜드군을 대륙에서 완전히 몰아내며 전쟁은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 잉글랜드는 칼레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상실했고, 프랑스는 중앙집권 체제를 정비하며 근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잔 다르크는 오를레앙 전투의 영웅이었지만, 결국 배신과 정치적 음모 속에 체포되어 1431년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다. 그녀의 죽음은 프랑스 내부 권력 싸움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녀가 남긴 민족적 상징성은 이후 프랑스 국민 통합과 종교적 정체성 강화의 핵심이 되었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교차점
앵글로-잔지바르 전쟁은 19세기 말 제국주의 경쟁이 얼마나 빠르고 극단적으로 폭력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유럽 열강은 1884년 베를린 회의를 통해 아프리카의 영토를 경계선 없이 나눠 가졌고, 잔지바르는 그러한 탐욕의 최전선이었다. 영국은 자신들의 영향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고, 이는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위선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백년전쟁은 중세 봉건제의 붕괴와 민족국가 형성의 시발점이었다. 국왕과 귀족, 교회 간 권력 투쟁은 국가 중심의 체제로 재편되었고, 전쟁을 통해 각국 국민은 '프랑스인'과 '잉글랜드인'이라는 집단 정체성을 각인하게 되었다.
이는 근대 민족주의의 출현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전쟁의 시간과 인간의 욕망
전쟁의 시간은 단순히 물리적 길이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앵글로-잔지바르 전쟁은 불과 38분이었지만, 제국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국제적 경쟁의 긴장 속에서 축적된 갈등이 일순간에 폭발한 결과였다.
반면 백년전쟁은 116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대적 이념과 정치 질서, 군사 기술,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복잡하게 얽히며 전개되었다.
칼리드 빈 바르가시가 권력을 향한 의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피했듯이, 잔 다르크 역시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들의 선택은 전쟁이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욕망과 가치가 부딪히는 장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전쟁은 이성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깊은 열망이 제도와 충돌할 때 벌어지는 극단적 현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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