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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맞닿아 있는 타이탄호의 실종
    사건과 이슈 2023. 6. 23. 18:08

    출항하는 타이타닉호 컬러화

    억만장자가 탑승하고 있었다는 타이탄호의 실종은 최근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오션게이트사가 운영하는 타이탄 잠수정으로 북대서양의 깊은 바닷속 침몰 되어 있는 타이타닉호를 관광하던 중 내부폭발로 인한 실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기술력으로 제작한 최신 선박으로 부유층을 탑승시키고 출항하여 침몰한 사건의 배경이 어딘지 모르게 맞닿아 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웅장한 위용

    북대서양의 차디찬 바다 깊숙이 잠겨있는 타이타닉호는 1909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있는 유명한 조선소 할랜드 앤 울프에서 건조되었습니다. 1911년에 완공되어 그 당시 기술력으로는 최첨단의 선박으로 기념비적인 작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배는 영국 해운 회사인 화이트 스타 라인을 위해 건조되었으며, 그 당시 가장 크고 호화로운 선박 중 하나였습니다. 수천 명의 인력과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 동원되어 설계된 배는 엔지니어링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그 자체였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설계는 저명한 해군 건축가이자 할랜드 앤 울프의 전무이사였던 토마스 앤드류스가 맡았습니다. 하지만 앤드루스는 첫 출항한 타이타닉호의 참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아이러니한 대목입니다.

     

    불운한 처녀항해

    타이타닉은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미국 뉴욕으로 처녀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타이타닉에는 약 2,224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탑승했으며, 여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수백 명의 이민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탑승객 중에는 미국의 부호였던 사업가 존 제이콥 애스터 4세와 영국 언론인 윌리엄 토마스 스테드 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처녀항해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고 타이타닉은 "결코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이 주장은 곧 비극적으로 반증되었습니다.

     

    빙산과의 치명적인 만남

    1912년 4월 14일 밤, 타이타닉은 북대서양에서 빙산에 부딪혔습니다. 빙산은 배의 선체에 구멍을 뚫었고, 배는 물에 잠겼습니다. 배를 구하려는 승무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해는 너무 심각했습니다. 배의 밴드가 승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배가 가라앉는 동안에도 연주를 계속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타이타닉 영화의 소재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배의 무선 통신사 잭 필립스와 해롤드 브라이드는 배의 전원이 끊길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조난 신호를 보냈습니다.

     

    비극적인 침몰과 인명 손실

    1912년 4월 15일 이른 아침, 타이타닉은 구출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침몰했습니다. 1,500명 이상이 사망하여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평시 해상 재난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탑승개 정원보다 부족했던 구명정 부족이 사망자 수를 늘렸다고 합니다. 침몰 사고는 2등석과 3등석 승객에 비해 1등석 승객의 생존 비율이 더 높았기 때문에 계급 격차를 부각하는 이면도 보여줍니다. 또한 충격적인 사실은 타이타닉에 탑승한 700명의 3등석 승객이 단 두 개의 욕조를 공유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타이타닉의 3등석 편의시설은 일반 선박의 편의시설보다 더 나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사실은 배에 탑승한 계층 간의 격차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타이타닉의 여파와 유산

    침몰 사고의 생존자들은 RMS 카르파티아 호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사고로 '국제 빙해 순찰대'가 설립되고 선박에 충분한 구명정을 비치해야 하는 등 해상 안전 규정이 크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타이타닉의 침몰은 수많은 책과 영화에 이야기로 남아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1997년 영화 '타이타닉'으로, 타이타닉의 이야기를 새로운 세대에 전해주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타이타닉 생존자와 영화 제작의 역사적 상호작용

    타이타닉은 수년에 걸쳐 다양한 영화 제작을 통해 대중문화에서 그 입지를 굳혀 왔습니다. 실제로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 중 두 명이 이러한 흥미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타이타닉 참사에서 살아남은 배우 도로시 깁슨은 배가 침몰한 지 한 달 만에 개봉한 영화 '타이타닉에서 구출되다'에 출연했습니다. 깁슨은 영화에서 실제 침몰 당시 입었던 것과 같은 옷을 착용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생존자인 로렌스 비슬리는 1958년 영화 '기억의 밤' 촬영 당시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배와 함께 가라앉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오리지널 타이타닉 참사의 경제적 영향

    최초의 타이타닉 참사는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배를 건조하는 데 2년 2개월이 걸렸고, 호화로운 디자인과 첨단 기술로 가득했습니다. 화이트 스타 라인은 3등석 350~900달러, 2등석 1,375달러, 1등석 약 8만 달러(현재 화폐 기준)의 티켓 가격으로 타이타닉의 항해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많은 승객이 재난으로 귀중품을 잃어버렸고, 이로 인해 "책임 제한"에 대한 수많은 청구가 이어졌습니다. 타이타닉에 실려 있다가 버려진 음식과 기타 물품의 비용도 상당한 손실이었습니다.

    Titanic Belfast

     

    타이타닉 비극의 재조명 : 2023년 타이탄호 참사

    1912년에 침몰한 비운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은 오랫동안 모든 이에게 매혹적인 사건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2023년 6월, 같은 장소에서 새로운 비극이 벌어졌는데, 이번에는 오션게이트가 운영하는 관광 탐사용 타이탄 잠수정의 실종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타이타닉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 사건은 타이타닉 난파선을 탐험하던 5인의 탑승객을 실은 타이탄호와 통신이 두절되면서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타이타닉 호가 재조명 되며, 심해 탐험의 위험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오션게이트와 타이타닉 호의 건조

    2009년에 스톡턴 러시와 길레르모 쇤라인이 설립한 민간 기업인 오션게이트는 2010년부터 여러 해안에서 상업용 잠수정 체험을 제공해 왔습니다. 이 회사의 타이탄 잠수정은 탄소 섬유와 티타늄으로 제작되어 5명이 탑승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운행 과정에는 어려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선체는 주기적인 운행으로 피로 징후를 보이다가 2020년에 수심 3,000m로 잠항으로 등급이 하향 조정되었고, 2021년까지 재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오션게이트 경영진은 안전 프로토콜에 너무 집중하면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타이탄에 대한 외부 인증을 받으려는 계획에 반대했습니다.

     

    타이타닉 잔해를 향한 타이탄의 불운한 탐험

    타이탄 잠수정은 5명의 승객을 태우고 잠수한 지 약 1시간 45분 만에 교신이 끊겼습니다. 약 80시간에 걸친 수색에도 불구하고 잠수정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원격으로 작동하는 수중 차량이 타이타닉의 뱃머리에서 약 488미터 떨어진 곳에서 타이탄호의 잔해 일부를 발견했습니다. 분석 결과 타이타닉이 하강을 시작한 직후 압력 용기가 파열되어 내부 폭발이 일어나 탑승자 5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타이타닉 난파선의 경제적, 관광적 가치

    타이타닉호의 잔해는 오랫동안 매력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션게이트 익스페디션은 현장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관심을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오션게이트 익스페디션은 타이타닉 잠수정에서 시민 미션 스페셜리스트를 선발하기 위해 25만 달러의 미션 교육 및 지원비를 부담했습니다. 관광 탐사는 북극의 계절 영향으로 인해 여름철로 제한되었으며 연간 30명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각 탐사는 타이타닉호 잔해까지 2.5시간 동안 하강한 후 타이타닉과 주변 잔해 지대를 몇 시간 동안 탐사하는 일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타이탄 수색 및 구조 작전

    타이탄 호의 수색 및 구조 작전에는 사고의 심각성을 반영하듯 여러 자산과 조직이 참여했습니다. 소나 기능을 갖춘 캐나다 해안경비대 소속 존 캐봇(John Cabot)이 상선 스칸디 빈랜드(Skandi Vinland)와 애틀랜틱 멀린(Atlantic Merlin)과 함께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모터 선박 호라이즌 아틱(Horizon Arctic)과 프랑스 연구선 라탈랑트(L'Atalante)(둘 다 원격 조작 차량 장착), 미 해군의 플라이어웨이 심해 인양 시스템 등 추가 자산이 배치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이탄 호는 인양되지 못했고, 탑승자 5명의 운명은 심해 탐사의 위험성을 일깨워주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타이탄호의 시사점

    타이타닉 참사는 심해 관광 탐험의 비용과 윤리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민간 부문 조직은 종종 이러한 종류의 작업에 대한 위험 평가를 수행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가용한 비상 대응 능력이나 잠재적 사고의 총 대응 비용을 적절히 고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타이탄 재해가 발생했을 때 비상 대응은 해당 지역에서 운영되는 자원의 용량을 초과했으며, 통합 지휘 센터가 구성되는 데에도 며칠이 걸렸습니다. 이 사건은 특히 외딴 해양 환경에서의 작전에 대한 비상 대응 능력과 비용에 대한 고려까지 위험 평가의 재고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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